엄마랑 뉴스를 보다가 내가 자제력을 잃었다.
정권을 뺏기고 일년여 뉴스를 보지 않았는데..
종일 TV조선만 보시는 울엄마..
엄마랑 조곤조곤 옛얘기 나누다가
뉴스를 보시던 엄마가 이재명때문에 몇명이 죽었는지 모른다며..
살인자란다.
전에 문재인 빨갱이라 욕하실땐 그냥 참고 들어주었는데..
이번 정권에 대한 울화가 엄마 앞에서 폭발해버렸다.
엄마는 놀라셨는지..
니가 그럴 줄 몰랐다..
내 앞에서 그렇게 큰 소리 낼 줄 몰랐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시더니 나가셔서 1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는다.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평생 엄마 앞에서 내 정치색을 드러낸 적이 없었는데..
엄만 놀라시고 상처를 입으셨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엄마 찾아 여천천으로 나간다.
밤벚꽃이 환한 여천천..
한참을 헤매고 기다리다 엄마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했다고..싹싹 빌었다.
랑이네 농막에서 캐온 민들레랑
주야네 뜰에서 따온 치차열매..
바람 잘 통하는 창가에 말려두었다.
엊그제부터 잡채가 드시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없는 솜씨에 잡채를 만들었다.
다행히 엄마가 맛있게 잘 드신다.
오늘은 엄마랑 솔마루길을 걷기로 한다.
엄마가 맨발로 걷자 하신다.
약간 절뚝 거리시긴 하지만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벼우시다.
엄마 다리가 많이 나아지신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
솔마루길엔 애기동백이 붉었고..
봄빛에 반사하는 진달래가 온산에 울긋불긋..
봄이 오면 어쩌면 가장 그리운 꽃 진달래..
오늘은 산에서 진달래 호사를 누렸다.
진달래빛에 흥건히 젖어들었던 하루..
엄마가 이렇에 산길을 걸을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 벗 님 -
귀촉도 / 김두수